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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트러스티드 트래블러 프로그램(TTP) 후기

일본의 자동출입국심사 프로그램인 TTP.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3년에 와서는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2023-08-07

이 글은 일본의 트러스티드 트래블러 프로그램(이하 TTP)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께, 2023년 지금에도 정말 TTP가 유용한지에 대한 후기를 알려드릴 목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발급 과정

먼저, TTP 카드를 발급하기까지 있었던 일들입니다. TTP가 유용한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목차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시간이 급한 분들은 "결론" 목차만 보셔도 되구요.

TTP 발급에 걸린 3시간 🐌

저는 하네다 공항에서 TTP 카드를 발급받았습니다. 발급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일단 수입인지를 구하는데에 애를 먹었습니다. 수요가 많은 것인지 공급이 적은 것인지 공항 주요 영역에서 가까운 편의점은 전부 품절이었거든요. 결국 돌고 돌아 공항 1층 구석에 있는 로손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수입인지를 구해와 각종 서류를 냈더니, 담당자분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안된다고 합니다. 여권 사진과 동일한 사진을 들고갔는데 6개월 이내 찍은 것만 된다네요. 다행히 공항 안의 증명사진 부스를 안내받아 새로 사진을 찍고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웃긴건 이 사진을 굳이 스캔해서 파일화 시킵니다. 처음부터 파일로 받으면 안되나...)

사진을 스캔하던 직원분은 사무실 이곳저곳 서랍장을 뒤져보기 시작합니다. 10분.. 20분.. 수납장이라는 수납장은 다 열어보시더니 난처한 얼굴로 서류 양식이 없다고 합니다. TTP 접수가 드물어 갖춰두지 않은 것 같다네요. 다른 사무소에서 가져와준다고는 하는데, 공항 보안구역 내부에 있어서 가져오는데만 30분 가까운 시간이 추가로 걸렸죠. 여기까지만 거의 2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립니다.

간신히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지문 등록 절차를 거칩니다. 이번에는 지문 인식기가 말썽을 부려 30분 정도를 추가로 소요합니다. 다행히 직원분이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거의 3시간을 카드 발급 신청에만 소모했네요. 여행 일정 중 TTP 카드를 발급 받으시려는 분은 계획을 넉넉하게 잡아두셔야겠습니다.

힘겹게 손에 넣은 TTP 카드

그래서 TTP는 유용한가요?

이렇게 힘들게 만든 TTP 카드인데요, 아쉽게도 저는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복병, Visit Japan Web의 등장

Visit Japan Web(이하 VJW)은 본래 코로나 검역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방역 절차가 간소화된 지금은 사실상 입국심사세관신고를 위해 쓰이죠.

문제는 이렇습니다.

  • TTP로는 입국정보 등록만 가능합니다.
  • 전자세관신고는 VJW로만 가능하고, 입국심사 정보를 먼저 등록해야합니다. 여기에 TTP는 연동되지 않습니다 😱

일본도 이제 세관신고는 전자 QR코드 위주로 돌아갑니다. 세관 QR코드는 VJW에서만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 어차피 VJW에 입국심사 등록을 해야합니다. 굳이 TTP에 또 입국정보 등록을 할 필요가 사라지는거죠. 아니면 TTP 입국심사 + 종이 서류를 통한 세관신고 조합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종이 서류는 이제는 이 아날로그의 나라에서조차 낯선 물건이 되어버렸다는게 문제입니다.

고장난 자동 입국 심사기

저는 TTP 카드를 발급받은 후 나리타를 통해 한 번, 센트레아(나고야)를 통해 한 번 입국을 시도해보았습니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요.

일단 안내 직원분들은 TTP의 존재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TTP는 재류카드도 아니고, 심사가 필요한 완전 외국인도 아닌 애매한 물건이다보니 시스템 관리가 잘 되지 않는거겠죠. 일단 여권을 보여주면 당연히 여러분을 외국인 줄로 안내할겁니다. 이 때 카드를 보여주면서 "자동화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면 내국인 심사 게이트로 안내합니다. 어쨌든 외국인인데 내국인 게이트라니, 두 정보가 충돌하니 직원도 저도 혼란이 옵니다.

결론은 외국인도 이용 가능한 자동화 게이트를 찾아가야합니다. 근데 이 게이트, 멀쩡하게 가동되는 모습을 못봤습니다. 나리타에서는 카드 인식에 실패했고, 센트레아에서는 아예 기계가 꺼져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진실의 방으로 끌려갑니다. 심사대 옆에서 구경만 해봤던 수상쩍은 사람들이나 들어갈 것 같은 철문 방에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여권을 가져갑니다. 솔직히 좀 쫄았는데요, 다행히 혼나는건 아니고 TTP 보유 자체로 입국 자격은 증명됐으니 알아서 행정 처리를 해줍니다. 심사관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일반 입국 심사처럼 여권에 상륙 스티커를 붙여주고 전용 철문으로 보내줍니다. 이렇게 통과하면 TTP 카드에 입국 기록은 남지 않습니다.

면세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일본의 면세 혜택은 제법 쏠쏠한데요, TTP를 이용하면 이를 제대로 챙기기가 어렵습니다.

원칙적으로는 TTP 카드를 제시해도 면세가 가능한게 맞습니다. 하지만 시내 가게의 점원들은 TTP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여권에 상륙 스티커를 받았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여권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편하자고 쓰는건데 비상용으로 여권이 필요하다니...

출국 심사는 모두가 하이패스

입국과는 다르게, 일본 출국 심사는 모든 이용객이 자동화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TTP 게이트는 대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일단 찾아가는 것부터 일이고, 심지어 줄을 더 오래 서야할 수도 있습니다. TTP의 장점이 자동화 게이트를 통해 빠르게 통과할 수 있다는 건데 이 마저도 퇴색됐네요.

결론

여행 준비부터 입국, 출국에 이르기까지 결론은 이렇습니다.

  • 일단 TTP 카드를 발급하면서 일본의 행정 시스템을 맛볼 수 있음
  • 세관 신고 하려면 VJW가 필수. 굳이 TTP에 입국심사 정보를 두 번 입력해야 함
  • (개인적인 경험으로) 입국 게이트는 매번 고장나있음
  • TTP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쇼핑 후 면세 처리에 애로사항이 많음
  • TTP 대응 출국 게이트가 한정적이어서 오히려 더 오래 걸림

결론은 "전혀 메리트가 없다" 입니다. 심지어 매 해프닝마다 발급창구 직원, 공항 안내원, 입국심사관, 가게 점원 등에게 일본어로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도, 일본어를 못하신다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장점을 뽑자면 TTP 자체가 입국 승인을 보장해주는 물건이기 때문에 입국 심사에서 무적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 정도겠지요.

판데믹을 겪으면서 팩스와 도장의 나라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날로그의 시대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었겠지만, 디지털의 시대에서의 TTP는 오히려 아날로그에 가까운 물건이 되어버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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